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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 (1)

형배인철 + 영화선모



1.

 바다냄새 지독한 부산은 오늘따라 유난히 조용했다. 바람소리도 잦아들 무렵이었다. 여름의 부산은 쨍한 햇빛에 타내려 가는 정수리 따위 신경 쓰지 않는지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담배연기가 천천히 퍼져나갔다. 그걸 오래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점점 옅어지는 담배연기 너머로 최형배가 보인다. 곧장 여기로 걸어오려 하기에 급하게 담배를 지져 끄고는 주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당황한 건지 얼빠진 표정의 최형배가 이쪽을 쳐다보다 발걸음을 뒤로한다. 근데 아뿔싸, 주방에 괜히 들어온 듯 했다. 홀에서는 싸움아닌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고 주방이모는 타이밍 맞춰 들어온 키만 좆나게 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미스 정이 좀 말려봐."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요!"


 이게 다 최형배 때문이다. 맨날 미스 정, 미스 정 불러대니 이제 아무나 날 보면 미스 정, 하고 부른다. 홀에는 남자 하나를 붙잡고 매달리는 아가씨가 제 분에 못 이겨 씩씩대고 있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아가씨가 저 놈한테 단단히 감겼나보다. 남자가 선순가, 그냥 뽀이같지는 않았다. 아직 입 안에서 텁텁히 남은 담배맛에 물 한잔을 들이키며 구경을 하고 있는데 손에 쥐여지는 노란 종이 두어장에 결국 홀로 나갔다. 시선이 잠시 집중되나 싶더니 이내 지갑을 꺼내 돈을 팔랑팔랑 흔들며 울어대는 아가씨에게로 옮겨간다. 뒤를 돌아 이모를 쳐다봤다. 어여 가라고 손짓하는 모습에 화가 울컥 차올랐다.


 "돈, 돈 있잖아. 나랑 서울 가자."

 "누나, 일단 나 일 끝나고. 그러고 다시 얘기 하자."

 "일? 무슨 일. 내가 돈 줄게. 아니면 마이킹 끌어썼니? 내가 내줄게."

 "아 쫌, 안간다고."


이젠 좀 불쌍할 지경이었다. 아가씨말고 남자가. "나가서 하시죠." 순식간에 눈알들이 날 쳐다본다. 으으, 부담스러운데. 뻗은 팔이 정확히 둘 사이를 갈랐다.


 "넌 뭐야. 여기 가드니?"

 "알 거 없고. 나가서 하시라고요."

 "신경 쓰지 말고 가던 길 가라."

 "시끄러우니까 나가서 하라고."


 짝, 아니 무슨 박수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소리가 나는지. 시선이 바닥에 처박힌 채로 머리를 굴렸다. 쪽팔려서 고개를 못 든 것도 있지만. 다시 그 아가씨를 쳐다보니 이번엔 반대쪽 뺨을 때린다. 이래서 한쪽 뺨을 맞으면 반대쪽 뺨도 내주라는 말이 나온 건가. 최형배한테 이르면 담금질 감 이었다. 볼을 어루만지며 한마디 하려는데 검은 옷을 입은 가드 형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그 덩치에 밀려 종이인형 마냥 의자에 앉아버렸다. 밀려오는 창피함에 얼굴이 후끈해졌다. 주방을 쳐다보니 괜히 핸드폰만 만지작대는 이모가 보였다. 진작에 부르던가. 나만 쪽팔리게. 그렇게 한바탕 가드들 손에 이끌려 나가는 아가씨와 뒤를 따라가는 남자가 지나가고 나는 또 터덜터덜 주방으로 들어갔다. "쪽팔리게 이게 뭐에요." 궁시렁대봤자 돈도, 대꾸도, 위로도 돌아오지 않았다. 대놓고 무시하는 이모에 그냥 한숨만 쉬고는 다시 주방 뒤로 나갔다. 



2.

 아직 해는 뜨겁고 바람은 여전히 안 불었다.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는데 길 건너에서 짱깨가 손을 흔든다. "형!!" 저 밤톨머리는 날 너무 좋아한다. 여기서 서울말 쓰는 사람이 나랑, 저 짱깨, 그리고 영환지 드라만지 하는 앵커새끼 이렇게 셋 뿐이라 금방 친해졌다. 사고치고 내려왔댔나. 연기를 뱉으며 왜 부르냐고 묻자 최 사장님!! 하고 위에 있는 당구장을 가리킨다. 기껏 들어간 데가 당구장이라니. 최형배 수준도 알 만했다.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주머니에 손을 쑥 집어넣고 다시 도도도 들어간다. 귀여운새끼, 뜨거워지는 손가락에 담배를 던져버렸다. 발로 한번 꾹 밟아주고 길을 건너갔다. 여긴 횡단보도 안만드냐. 이러다 누구하나 황천길 건너는거 아닌지. 계단 앞에 서는데 유리문 너머로 살짝 보이는 짱깨새끼가 고개를 까딱 한다. 뭐 어쩌라고, 엿이나 날려주고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문을 열면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신경쓰였다. 열심히 당구를 치는 최형배와 큐대 잡고 얌전히 지 차례 기다리는 앵커새끼가 눈에 들어왔다. 얼굴도 똑같이 생긴 새끼들이 조또 안 친하면서 당구는 맨날 같이 쳐, 손님은 둘을 빼곤 아무도 없었다. 여기도 장사 드럽게 안되는구나. 


 "미스 정, 왔구나. 커피 좀 내와라."

 "사장님 부탁만 듣거든요."


 물론 개구라다. 싸구려 장미문양 쟁반에 종이컵 세개를 열맞춰 올려두고 믹스커피를 뜯어 촤라락 부었다. 크, 날이 갈수록 커피타는 실력만 늘어갔다. 정수기보다 커피포트를 선호하는 터라. 요란스레 끓어오르는 물을 하나하나 부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물이 선을 맞춰 차오른다. 티스푼으로 두세번 저어 최형배에게 먼저 가져다주니 입도 열지 않고 당구에만 집중한다. 개새끼, 어디서 온건지 윤 앵커가 지 컵을 가져간다. 커피냄새가 당구장에 은은히 퍼졌다. 지가 급하게 마셔놓고 뜨겁다고 지랄을 하는 앵커새끼가 꼴사납게 펄쩍댄다. 그제야 최형배도 큐대를 내려놓고 커피를 홀짝댄다. 


 "미스 정, 아까 와 피했노?"

 "예? 제가 뭘..."


 하하, 하고 멋쩍은 웃음을 덧붙이니 "담배피다 주방으로 드가지 않았나?" 한다. 눈치없게, 좀 모른척 해주면 어디 덧나나보다. "주방이모가 불러서요." 물론 미리 생각해둔 변명으로 무마하고 다시 커피를 마셨다. 통수가 조금 뜨거웠지만 그래도 당구 구경에 재미가 붙어 계속 눈을 두었다. 윤 앵커보다 우리 사장님이 조금 더 잘하는 것 같았다. 

 이 당구장은 곧 폐업이라고 들었다. 장사가 드럽게 안되더니 결국 떠나나보다. 이 소식을 들었을때 최형배는 많이 안타까워했다. 이제 어디서 당구치냐고 맨날 투정부리던 모습이 징그러웠다. 당구장이 여기밖에 없냐고 물어보면 늘 같은 얘기 뿐이었다. 그놈의 짱깨집.


 "아래 짱깨집이 맛있어가." 

 "아니, 짱깨집이 없어져요?"

 "당구장에서 시켜묵어야 맛있으니까 그러제."


 생긴거랑 다르게 실없는 소리도 잘 해댔다. 그래놓고 또 덧붙이는 말이 가관이었다.


 "당구장 살까?"

 "미쳤어요?!"


뒤통수에 절로 손이 가는걸 겨우 참고 언성을 높였다. 장난이겠거니 했는데 끝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최형배에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그 말을 들은 이후로 최형배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당구장을 찾았다. 언제는 최 사장과 윤 앵커가 네시간을 내리 당구만 치는걸 앉아 구경해야 했었다. 당구에 미친새끼들. 



3.

 오늘도 길어질것 같은 게임에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니 마침 배달 다녀온 선모가 헬멧을 벗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어, 밥이나 먹자." 담배를 입에 물고 말하느라 담배가 꺼떡였다. 좋다고 따라나온 선모가 옆에 찰싹 붙는다. 


 "더워, 새꺄."

 "아, 담배냄새. 담배 좀 작작펴요."

 "꼬우면 니도 피던가."

 "으, 그 맛없는걸 왜 펴요. 그나저나, 형. 그거 들었어? 고 마담네 에이스 도망갔대요."

 "엥? 왜? 돈 잘 벌더니."

 "글쎄, 한 일주일 동안 코빼기도 안보이더니 엊그제 손가락 하나가 고마담한테 날라왔대. 그 아가씨 찾지 말라고. 죽여버린다고."

 "그런짓을 왜 한대? 하여튼, 새끼들 할 일 지지리도 없나보다."

 "그러니까여. 손가락 없는게 얼마나 속상한데."


 아 맞다. 이 새끼 손가락 없었지. 지 손을 쫙 펴서 휑한 중지와 검지를 안쓰럽게 쳐다보다가 다시 주머니에 찔러 넣는다. 서울에 있을때 경찰이었다고 했나. 하여튼 비밀이 존나게 많은 새끼다. 

 

 "포차 갈래요?"

 "술 마실 기분 아니다."

 "술을 기분으로 마셔요? 아니 그것보다, 형이 술을 거부하다니..."

 "내가 무슨 술고래냐? 민수새끼나.., 아."

 "네?"

 "아니야. 아무것도. 걍 포차 들어가자."


 이제 잊어버릴 때도 됬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신나서 흥얼대는 짱깨 덕에 금방 잊고 자리에 앉았다. "후레시 두병이랑 껍데기 2인분이여." 소리가 먹먹하게 들렸다. 그날 이후로 간간이 이런다. 귀에 물이 들어찬 것처럼. 껍데기가 불판 위에서 익어가는 모습을 쳐다보며 옛날 생각을 좀 했다. 최형배가 날 구하지 않았으면 난 죽었을까, 살았을까. 타닥대며 튀어오르는 껍데기는 맛있게 익어 좋은 냄새를 풍겼다. 내가 죽었으면 현태는 슬퍼했을까, 기뻐했을까.

 신나서 젓가락을 뻗었던 선모가 아뜨뜨,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지랄은, 술이나 줘." 잔을 내미니 알코올 냄새 풍기는 물이 꼴딱꼴딱 차오른다. 입에 털어넣으니 목구멍이 화끈해졌다. 포차는 술냄새와 고기냄새와 사람냄새로 무르익어갔다. 잔이 비어가면 귀신같이 술을 채워넣는 탓에 입은 쉬지않고 고기를 집어넣고, 술을 털어넣어 위장으로 넘겼다. 빈 병이 쌓여가자 나도, 선모도 볼에 열을 잔뜩 올리고 붉어진 귀로 껍데기를 뒤집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느낌이었다. 인당 두병을 넘게 마신 술은 이제 줄어들 생각이 없어보였고 불판 위에는 타버린 껍데기 몇 점이 검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고개를 휙 돌리면 내 시야도 같이 휙 돌아갔다. 마치 렉이 심한 컴퓨터에서 창을 드래그 했을 때 버벅이는 것 처럼 어지럽게 만들었다.


 "형, 나는 형이 좋아요."

 "징그럽게 왜 이래, 벌써 취하냐."

 "형. 나는 형이 좋아서요."

 "뭐 새꺄. 나도 너 좋아. 됐냐?"

 "근데 형이 불쌍해서요."


 하고싶은 말이 많았는데 입 밖으로 내뱉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왜 불쌍해. 나는 불쌍한 사람이 맞아서 그 말은 못했다. 너가 더 불쌍해. 그러면 선모가 울 거 같아서 그 말도 못했다. 난 괜찮아. 그건 거짓말이라서 못했다. "취했다. 가자." 한참 정적이 지나서야 나는 말을 꺼냈다. 이건 도망치려고 한 말이었다. 이 지옥같은 삶에서 도망가려고 꺼낸 말이었다. 넌 대답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가니 선모가 우두커니 서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나 담배필거야. 싫으면 먼저 가던가."

 "나도 담배 필래요."


 말리기 싫었다. 손에 곱게 담배 한대를 쥐여줬다. 뻐끔대며 흰 연기를 내뱉는게 담배피는 사람들은 금붕어 같다. 아니면 말고. 콜록대면서도 계속 담배를 무는 선모를 안쓰럽게 쳐다봤다. 연기가 길게 나가지 않고 뚝뚝 끊기며 짧게 퍼져나간다. 담배냄새 싫다는 새끼가 담배를 피고 앉았어. 어째 술을 마셨는데 기분이 더 축 처진다. 아직 자정도 넘기지 않은 시간인데 새벽감성이 넘실넘실 차올라서 침을 퉤 뱉었다. 길게 늘어지는 더러운 침이 바닥에 툭, 하고 떨어져 더러운 흔적을 남겼다. 좆같은 기분에 눈물이 찔끔 났다. 진짜 찔끔. 개미 오줌만큼.

이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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